퀴어예술연대 <『휘말린 날들』 북토크 – HIV감염을 둘러싸고 예술하기>기록 사진: 허호
일시: 2024. 7. 31. (수) 19:30~21:30 (120분)
장소: 들다방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길 25 유리빌딩 4층)
강의: 서보경 <『휘말린 날들』 저자,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패널: 최장원 <시각 예술가, HIV 감염인> 양승욱 <시각 예술가, 아티스트 콜렉티브 ’살친구‘>
사회자: 연혜원 <사회학 연구자, 퀴어예술매거진 <them> 발행인>
주관/주최 및 행사 진행
– 퀴어예술연대(허호, 연혜원, 양승욱) @queerartactive : <퀴어예술연대>는 퀴어예술연대는 성정체성, 지향성, 성별, 인종, 종교, 장애 등 모든 다름을 인정하며 그에 따른 모든 차별을 경계하고 배워나가려 하는 예술가의 모임입니다. 퀴어예술의 곤경에 맞서 함께 싸워나갑니다.
– 휘말린 사람들 : <휘말린 사람들>은 책 『휘말린 날들』 을 활용해 HIV/AIDS인권운동의 경험과 고민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활동가들의 모임으로, HIV/AIDS 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일원들입니다.
장소 및 문자통역 협찬 : 들다방 <들다방>은 마로니에공원 뒤편 ’대항로 빌딩‘에 위치한 카페이자 급식소. 장애인권운동 단체들의 진지 ’대항로 빌딩‘에는 노들장애인야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권운동 단체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곳에서 들다방은 밥과 커피를 제공하는 에너지 보급소이자, 다양한 몸을 가진 이들이 교류하는 복합문화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2024.07.31. 주최/주관 휘말린사람들, 퀴어예술연대, 장소 들다방, 도서 <휘말린 날들> 북토크 – HIV감염을 둘러싸고 예술 하기 – 속기 요약 시작-
-책 소개 및 강의-
(보경) ‘휘말린 사람들’은 HIV/AIDS 인권 운동이 그간 애써온 성과와 실패가 무엇인지 다른 인권 운동 단체와 함께 나눠보고, 또 우리가 그간 운동의 과정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우리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찾아보는 과정을 통해 HIV/AIDS 인권 운동에 있어 새로운 영감과 방향을 찾고 있는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저희가 벌써 일곱 번이 넘는 행사를 진행을 지난 3개월 동안 해왔는데 마지막을 이 들다방, 노들의 품 안에서 퀴어예술연대와 함께할 수 있어서 특히나 매우 뜻깊습니다. 휘말린 사람들의 활동에서 저희가 장애 인권 운동의 너른 지평과 조우하는 순간을 만들어보려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 공간으로나마 노들에서 장판의 여러 활동가들이 함께해 주시는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서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목표하는 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어떻게 하면 한국의 HIV/AIDS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게 할 것인가. 두 번째는 이 역사를 한국에서 인권 운동의 관점으로 읽어오려고 한 사람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떤 투쟁이 있었는가를 어떻게 쓸 것인가. 세 번째로는 감염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문화기술지 쓰기라고 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하는 세 가지 목표를 이 책이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주된 주장은 ‘감염’이라는 현상을 ‘휘말림’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이해해 보자고 하는 데 있습니다.
‘휘말림’이란 무슨 개념인가? 감염을 휘말림의 상태로 이해해 보자는 게 어떤 주장이냐면요. 감염을 서로가 서로에게 휘말려 있는 상태로 생각하자고 하는 것, 중동태의 형태로 사고하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염을 가해와 피해의 양자 구도로 흔히 생각합니다. 인체 생물학적인 과정으로는 바이러스로부터 공격을 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사회적인 과정으로는 ‘슈퍼 전파자’ 같은 사람들, 자신의 행위에서 충분한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회 전체에 큰 해를 끼치는 것을 감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정말 감염은 그러한 과정인 건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면 HIV 바이러스와 인간 세포는 서로가 이끌리는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도착하게 됩니다. 바이러스를 우리가 흔히 반(半)생명이라고 부르는데요. 그것은 바이러스 그 자체가 스스로를 증식시킬 능력이 없고, 인간세포가 제공하는 특정한 종류의 유전물질을 확보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다시 증식할 수 있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것은 누가 누군가를 공격하는 적극적인 과정이라기보다 두 가지 생명 형식이 서로 매우 근접한 상황에 도착하였을 때 만들어지는 화학적이고 생물학적인 과정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감염하다’라고 하는 걸 그냥 누군가 억지로 시키거나 당하는 일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 속에서는 자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생각해보자고 하는 것이 주요 주장입니다. 그래서 ‘감염하다’를 중동태로 쓰자고 하는 게 책의 주장인데요.
‘감염하다’를 중동태로 씀으로써 행위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을, 사람이나 바이러스로 특정하지 않고, 둘이 동시에 함께하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로 생각해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생명 형식이 마주하게 되면 특정 조건 하에서는 자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로 사고하자고 하는 제안이고, 이걸 통해서 HIV 감염이 특수한 종류의 어떤 사람들에게만 나쁜 일의 결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마땅히 자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생각하자고 하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은 두 가지 종류의 이점이 있는데요. 하나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HIV에 여러 가지 형태의 낙인을 부여하는 이유, 감염을 사고하는 방식에 아주 중대한 문제를 짚어서 감염에 대한 우리 인식을 전환, 사고 구조 자체를 전반적으로 뜯어 고쳐서 HIV 감염인에게 부여하는 여러 종류의 편견과 차별 역시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이론이라는 게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만들어내고 지어내는지 관여하는 중요한 방식이라고 한다면, 감염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우리가 감염과 함께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변화를 줄 수 있으리라는 게 이 책의 주장입니다. 누가 당사자인가, 누군 당사자가 아닌 것인가? 안은 어디고 밖은 어디인 건가 경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가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자는 관점을 제안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휘말림은 이론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HIV/AIDS 인권 운동의 상태이자 동력을 설명하고 있는 언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휘말림은 우리가 겪는 일들에 부정성이 있음을 인정하자는 거거든요. 휘말림은 싸움에 휘말리는 거고, 전쟁에 휘말리는 거고, 내가 지금 당하고 겪어내는 일이, 사실 나쁜 일일 수도 있다는 형태의 부정성을 직시하면서도, 그 부정성을 겪어내는 과정을 통해서, 상호성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저는 이게 일종의 HIV/AIDS 인권 운동이 가졌던 어떤 ‘기세’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결국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많은 일들에는 나쁜 일들도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걸 겪는 앞줄에 있는 사람이다, 내가 먼저 휘말렸음을 적극적으로 힘껏 맞서내려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운동, 그것이 HIV/AIDS 인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통해 오늘 같이 얘기해보려는 건, 그렇다면 사회의 변화, 새로운 변혁이란 어떻게 일어나는가. 우리는 이전에 없던 무언가 새로운 걸 생성하는 과정은 사실은 휘말림의 기세와 태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그걸 이 책에서 주장합니다.
퀴어예술연대는 이 책이, <휘말린 날들> 이 책이 일종의 아카이브 작업이라고 읽으셨대요. 사회과학자에게 아카이브는 문헌보관소라는 의미거든요. 아카이브라는 어원은 공적 기록이에요. 통치하는 자가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모으는 게 아카이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아카이브는 질서를 만들기 위한 종류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작업은 어떤 공적 기록들을 차곡차곡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인 걸까? 제 책은 오히려 공적 기록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새롭게 쓰는 과정, 그것은 옷감을, 실을 짓듯이 역사를, 과거에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새롭게 지어내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와 현재와 우리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미래와의 연관성 속에서 과연 무엇이 지금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고, 기억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걸 적극적으로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적인 역사 만들기로서 아카이브보다는 인류학에서 중요한 방법론으로 얘기하는 브리콜라주에 가깝지 않은가.
이를테면 첫 번째 감염인은 누구였는가? 한국에서 처음 HIV에 감염된 처음 여성들, 첫 줄에 섰던 여성들 중 하나가 나라에 ‘내가 받은 검사는 잘못되었다’ 소송하고 그 소송이 판결문으로 남았는데. 그 판결문은 일종의 아카이브로써 어떤 판결을 만들어냈는지 기록하지만, 우리가 그 판결문을 새롭게 읽는 과정을 통해 그 여성이 사실은 모든 퀴어 존재에게 어떤 종류의 조상이 될 수 있는지 새롭게 생각해볼 계기와 기회를 가집니다. 그러한 형태의 역사 쓰기가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패널 1 최장원 작가, 패널 2 양승욱 작가 소개-
(혜원) 패널로 앉은 두 분의 짧은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장원) 저는 HIV/AIDS 감염인 당사자성으로 그걸 기반으로 미술 작업을 합니다. 올해 10주년이에요. 제 미술 전시들은 HIV/AIDS 당사자성을 기반으로 했었어요. HIV/AIDS 감염인분들이 많이 고립이 되잖아요. 전시 전체적으로 테마가 ‘밖으로 나가고자’였어요. 그다음 전시는 다른 사람들도 내 얘기에 휘말리게 해 보자. 전시장이 파티장처럼 꾸며져 있었어요. 영상 작업도 하고 화려하게 해 보려고 했어요, 일부러 과장되게. 어떤 관객분은 저보고 제가 죽는 줄 알았나 봐요. 그러니까 미검출, 이런 걸 하나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HIV가 이제 죽는 병이 아닌데 그런 걸 모르시고 제 손을 잡고 막… ‘작가님 그럼 이제…’ 그래서 저는 ‘네?’ 이러고. 그랬던 가장 대표적인 경험들, 그런 걸 얘기를 해 봤습니다. 양승욱 작가님은 어떠셨나요?
(승욱) 저는 시각예술 작가이고, 주로 사진 매체로 작업, 주제가 언제부터인가 퀴어로 뒤덮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사진 찍고 계신 작가분이랑 살친구라는 콜렉티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가 패널로 참여하게 된 이유는 저희가 작업 중에 HIV/AIDS에 관련된 작업이 하나가 있어요. 단체전에 참여를 하게 됐는데 단체전 주제가 질병에 관련된 주제였어요. 왠지 모르게 저에게 HIV/AIDS를 맡으라고 기획자분께서…… 이후 ‘살친구’라는 콜렉티브 이름으로 다시 재참여를 하게 돼서 HIV/AIDS에 관련된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어요. 옛날 신문 기사부터 시작해서 그 당시 최신 기사까지 정말 이 잡듯이 다 뒤져서, 저희가 마지막으로 했던 건 HIV/AIDS에 관련된 OX 퀴즈로. 당시에 자료를 보면서 생각했던 게 신문 기사가 진짜 많은데 정작 신문 기사조차도 이상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신문의 주체가 제일 최상위로 올라가면 주로 종교 단체들이 많아서 그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신문들이 계속 끊임없이 뭔가 잘못된 기사들을, 정보를 계속 쏟아내고 있었고 그게 끊임없이 재생산되더군요. 저는 게이 커뮤니티 내에 있는 HIV/AIDS 정보는 알았는데, 그 외의 정보들은 사실 몰랐거든요.
조사만 한 게 아니고 나중에 설치 작업을 했어요. 한국에서 학부모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들이 누군지 아세요? 키스헤링. 아이들이 진짜 좋아합니다. 엄마들이 항상 그걸 같이 보기 위해서 줄을 서서 가는데 거기에 HIV/AIDS 관련된 정보는 항상 빠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했던 작업은 그 당시 키스헤링과 굉장히 친했던 작가가 바스키아였고 바스키아가 죽고 나서 키스헤링이 바스키아를 기리기 위한 왕관더미를 이렇게 그려놓은 작업이 있어요. 그 왕관더미를 다시 한번 직접 주먹 반만 한 금으로 된 왕관을 800개 정도를 들고 와서 전시장에다가 놓고 거기에다 OX 퀴즈와 답안지를 같이 둘둘 말아서 사람들이 보고 그 왕관도 기리면서 OX 퀴즈도 풀 수 있게 하는 설치 작업을 했고. 그동안 저희가 기사들을 계속 책으로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지 계속 빨간펜으로 찍찍 그으면서 설명을 하는 스크랩북을 넣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어려웠던 건 HIV/AIDS 비당사자로서 어떤 작업을 해야 될지였어요. 조금만 말을 잘못해도 난리가 날 것 같았으니까요.
(혜원) 선생님께 질문 드리고 그다음에 이어서 패널들과 얘기를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 주제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보경) 제가 인류학자가 되기 훨씬 전에 HIV/AIDS 인권 운동이라고 하는 걸 하게 됐습니다. 2000년대에 차별금지법 문제를 같이 이야기하는 과정 중에서 HIV/AIDS에 감염된 문제를 같이 생각해 보자고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왜 이것이 우리에게 한국의 인권 운동의 중요한 의제로 함께해야 하는 문제인지를 설득하는 운동의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저는 인류학이 책으로 배우고 저녁에 활동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식이구나 하는 걸 알게 돼서 대학원에서 배운 것도 사회에서 쓸모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걸 처음 경험해 보게 되고요. (패널_원동력은?) 원동력은 죄책감과, 아직 이루지 못한 과제는 무엇인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아직도 이룬 게 없다니. 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을 2007년부터 했는데 아직도 전면개정을 못 시키고 있다니. 운동은 뭐 하러 했나. 분노와 죄책감과 무능력함에 관한, 자아성찰이라기보다는, 아직도 하고 있는데 너는 도망 가냐? 너도 같이 계속 하자! (패널_멱살.) 그렇게 됐습니다.
(혜원) 아주 좋은, 토스가 바로 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최장원 작가님께 토스해서 이어서 얘기하겠습니다.
(장원) 저는 HIV/AIDS 예방하는 기관에서 일하고 있어요. 예방하고 검사하는 곳입니다. 감염 안 된 사람들도 만나고, HIV/AIDS를 사고하는, 걱정하는, 생각하는, 닿아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일하게 됐고요. 작업으로 할 수 있는 얘기랑 현장에서 겪을 수 있는 일, 느낄 수 있는 일이 다르더라고요.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HIV/AIDS 관련 인권에 대해서 주장을 하고 있는데, 정작 HIV/AIDS 관련해서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성소수자들이 또 혐오에 앞장서는 걸 많이 보기도 했어요. ‘그들은 어떤 삶을 사나요?’라고 저한테 물어봐요. ‘그들은’은, ‘HIV/AIDS에 감염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사나요?’ 그리고 감염한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퍼뜨리고 다닌다고. 그럼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해드려요. ‘당신이 당신과 가까운 사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친구나 그분들이 혹시 HIV 감염인이 되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말씀할 거예요?’ 아니면 ‘당신이 감염인이 되면 어떻게 느끼실 것 같아요?’ 두 질문을 꼭 드려요. 그런데 두 질문에 대한 답이 또 달라요.
자기가 감염되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면 남성 동성애자분은 감염시킨 사람을 찾고 싶대. 처벌하고 싶다고 해요. 심각하다고 느껴요, 저는 정말로. 저는 현장에서 있으면서 그 순간이 가장 놀라워요. HIV/AIDS 예방법 19조, 예방법에 처벌 조항이 있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돼요. 다른 전염병 관련 예방하는 법들에는 처벌하는 문구가 아예 없는데, AIDS 관련 예방법에만 처벌 조항이 있어요. 상대방에게 HIV/AIDS 감염 사실을 말하지 않고 성관계를 하면 처벌을 한다. 진짜 이렇게만 써 있어요. 어떤 분은 숨어버리고 싶대요. 그냥 고립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사실 실제 법적으로는 그러지 않아도 되거든요? 직장을 일단 퇴사하고, 이걸로 시작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게 사실 아무 강제력도 없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는 분들이 있어요. 스스로. 그게 해결해야 될 많은 편견들이겠죠? 내면화된.
‘주변 사람들이 감염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질문에는 대답을 안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감염시킨 사람이 애인이면 헤어지겠다는 분들도 있고, 안 그런 분들도 많고, 친구면 뭐라고 말하는 분들이 제일 인상깊었냐면, 뭐라고 하냐면 그나마 알고 계신가 봐요. 그래서 ‘약 잘 먹어. 미검출돼야 하니까’ 이런 말을 하고 싶대요. 미검출은 HIV/AIDS 감염인이 치료제를 잘 먹어서 HIV 바이러스 수치가 극단적으로 낮아져서 AIDS로 진행을 안 하고 수명이 줄거나 하지도 않고, 전파 능력까지 없어지는 상태를 미검출 상태라고 해요. 그걸 말하겠대요, 자기 친구한테. 그건 굳이 말 안 해도 잘 알 거거든요. 의사가 말해야 되는 거예요, 그건. 왜 그걸 말하고 싶을까? 그 말은 ‘감기 걸리지 않게 따뜻하게 잘 입고 다녀’라는 말과 맥락이 달라요. 한계선을 또 만드는 것 같아요. 어떤 한계선. 뭐냐면 약간… 이미 성소수자들은 선이 하나 있잖아요. 성소수자인 사람,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 필터를 한번 거쳐서 이 사람하고 말을 해야지, 이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지, 이 사람하고는 성소수자 얘기를 못 하겠지… 이런 필터를 거치고 거기서 또 HIV에 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친구, 없는 친구 또 나뉘고, 그 안에서 또 나뉘는 거예요. 미검출인 감염인, 미검출이 아닌 감염인. 필터가 하나 더 생기는 거예요. 그걸 또 한 번 상상하게 하는 거예요. 감염인 당사자는 이 사람이 HIV/AIDS 관련된 걸 말할 수 있을 만큼 믿을 만하고 차별을 안 할 거라고 생각해서 말했는데 처음 듣는 말이 ‘잘 챙겨서 미검출로 만들어’면 그것도 한 번 생각해볼 지점 같습니다. 예술할 때는 내 얘기만 해서 편했는데 현장에서는 남의 얘기도 같이 생각하면서 해야 되니까.
(혜원) 저는 이 점이 재미있었어요. 한 그룹에서 ‘질병’을 주제로 예술가들이 모여 함께 작업하는데, ‘HIV’라는 주제는 당연히 게이 작가한테 가는. 저는 당사자성과 비당사자성이 혼재돼 있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모든 퀴어가 다 모든 정체성과 직면한 질병에 대해서 당사자는 아니잖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당사자로서 리서치를 해나가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고민들에 대해 들어본 다음, 현장에 오신 분들의 질문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승욱) 아주 어려웠어요.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가 가장 큰 어려움이었고, 두 번째로는 뭔가 조금이라도 잘못 전달되면 어떡하지? 예술 작업이긴 한데 이걸 굉장히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뭔가를 전달해 줘야 된다는 그런 것들이 그 당시에는 산재했었고, 전시 후에도 바로 하는 말이 ‘다 아는 얘기인데, 뭐’ 이렇게 얘기를 하시다 보니까 현타가 오는 거예요. 저는 중간에서 온도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는 것 같아서 아직도 내 옆에서는 상담해 보시면 알겠지만 HIV랑 AIDS가 뭔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그걸 중간에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관련 주제를 하려고 하면 정작 당사자분들은 ‘저번에 했던 얘기 또 하네?’ 그게 가장 어려웠어요.
(혜원) 최장원 작가님에게 질문. 계속 영상 작업을 하시다가 현장 일 하면서 이후에 작업 계획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어요.
(장원) 자꾸 휘말리게 하고 싶어요, 더. 전 작업들도 남을 데려오고 했잖아요. HIV/AIDS 관련 이슈에 대해서. 전에는 이 얘기를 전할 사람이 구체적으로 누군지, 이렇게 카테고리화돼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 이슈에 연루돼 있는 사람들을 집어서 해야 될 것 같아요. 성관계 하는 20, 30대, 성정체성… 이런 식으로 좁혀서.
HIV/AIDS 감염인들이 ‘당신은 HIV에 감염되었습니다.’라고 질병관리청 말고 구청에서 일하는 질병관리팀, 코로나 일하는 부서가 HIV를 같이 해요. 거기서 질문지를 받아요. 내방해서 작성할 수도 있고, 문자로 받거나 해서 보낼 수도 있어요. 성지향성이나 관계를 누구랑 했는지, 동성인지. 그걸 취합해서 통계를 내요. 년도별로. 그래서 그래프가 나와요. HIV 감염인의 성지향성 비율. 여성 동성애자 몇 퍼센트, 남성 동성애자 몇 퍼센트, 남성 이성애자 몇 퍼센트… 이게 그래프가 실제로 있어요. 물론 그 설문지에 ‘미응답’, ‘기억 안 남’ 해도 돼요. 사실 그 설문지의 진위를 파악하지는 않아요. 그 통계 보면 남성 이성애자가 아주 많고 남성 동성애자가 반반이에요. 그런데 그 그래프가 틀릴 거예요. 왜냐하면 HIV는 ‘피삽입자’라고 하죠? 피삽입자 감염 가능성이 훨씬 높거든요, 10배가. 그런데 남성 이성애자, 여성 이성애자 비율이 말이 안 돼요. 여성 이성애자 비율이 훨씬 낮아요. 실제적이라면 여성 이성애자가 더 많아야 되거든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할까, 그걸 작성하는 순간에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일 거예요. 익명성이 보장되는데도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저는 초점을 두고 싶어요. 앞으로 그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아요.
(보경) ‘살친구’라는 게 아트 콜렉티브 이름이잖아요. 그 말을 듣고 보니까, 대부분의 친구는 살친구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 친구가 된다고 하는 건 살갗이 닿지 않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아까 훨씬 성적인 뉘앙스로 말씀을 해 주시기도 하셔서 살친구의 반대말이 있는 건지.
(승욱) 살친구 자체가 우리나라에 동성애자라는 말이 없을 때 쓰였던 말처럼. 그중에서 특히 남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말로 알아서, 남성 동성애자의 반대말이 뭘까요? 반대의 단어는 저도 들어본 적은 없어요.
-쉬는 시간 후 프리 토크-
(청중) 책 읽고 지난번 북 토크에 참여했고 또 한 번 오게 됐습니다, 그때 완전히 해소가 안 된 게 있어서. HIV/AIDS에 대해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한 가지의 전략, 예방이라는 하나의 전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안전해, 이렇게 하면 우리가 전염되지 않아’ 부정확한 지식들을 바로잡는 방식에 있어 효용성도 매우 크겠지만, 저는 이 책이 어쨌든 ‘휘말림’이라는 관점이라는 것 자체가, 그런 예방을 넘어서는 그림을 제시한다고 이해했거든요? 감염될 수 있는 위험한 섹스를 내가 할 수도 있는 하나의 권리로 선택할 가능성이라는 것. 예방의 전략, 앎이나 모름의 정도 차이를 해소하는 게 아니라, 책은 이것에 대해 바라보는 태도나 관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을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이것을 우리가 넘어선다는 게 무엇일지. 예방과 안전 또한 완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책의 관점에서 어떤 청사진이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지. 예방의 국면이 아니라 다른 국면이 무엇일지…
(보경) OX 퀴즈를 만들어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예술가의 작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무로 다가왔다는 게 저한테도 흥미롭게 다가왔었는데. 우리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왜 이게 맞고 틀리고,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를 굉장히 주의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 저는 위험이라고 하는 특정한 지식의 종류가 가진 이중적인 속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이 위험하다는 정보를 더 많이 알수록 그러면 우리는 더 안전해지는 걸까.
인류학자 중에 메리 더글라스라고 하는 사람도 ‘우리는 위험을 어떻게 다루는 걸까’를 고민했는데, 그에 따르면 리스크 개념은 기본적으로 확률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위험에 대한 지식을 더 알면 알수록 우리 안전에 대한 감각이 더 커지는 게 아니라 그래도 만에 하나, 0.03%의 문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는 부정적 결과를 더 중요하게 만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방 담론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위험에 대한 지식을 높이는 게, 나쁜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형태의 확증을 더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사실 중요한 건 주사기를 통한 HIV 감염의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의료인이 혈액과 주사기를 다루는 환경에서 실수로 주사기에 찔리지 않도록 어떻게 하면 그 상황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인가, 안전한 환경이 주어졌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인 거잖아요.
결국 이 책은 HIV가 감염되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니고 별일 아니라는 종류의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라, 이것이 가진 부정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일이 우리가 그 부정성을 더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과 관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예방에 관한 이야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예방에 대한 이야기가 단순히 위험이 얼마나 있는지를 따지는 확률적이고 통계적인 사고가 아니라, 위험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 모두가 공유한다고 할 때 그 위험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다룰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예방 담론의 주된 구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원) 인상 깊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보를 아는 게 도움이 되죠. 다만 정보를 얻고 나서 그걸 어떻게 다루는지는 그 사람 거죠. 내가 이 정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생각을 하려면 HIV/AIDS에 대한 다각도의, 다른 방향에서의 생각을 해야 하겠죠.
(청중) 휘말림의 관점에서 ‘장애’를 어떤 식으로 같이 얘기할 수 있는지 궁금하고요. 당사자성을 어떤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 당사자만이 뭔가를 할 수 있는 건지. 어디까지가 당사자라고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현장에서 활동하시면서 퀴어판이 아닌 이성애자 여성이라든지 이주민 여성, 이주하는 과정에서 질병이 발견된 그런 사람들도 어떤 식으로 교차하면서 운동을 하고 계시는지.
(청중) 저는 <휘말린 날들>을 읽으면서 장애 운동에서도 비슷한 게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장애 운동에서 장애 당사자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 당사자가 가진 특성들과 이 당사자의 특징들에 대해서 서로 많은 지식을 만들어나가고 그것들을 서로 공유하며 어떻게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런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가 휘말리는 과정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휘말림은 HIV/AIDS의 휘말림과 유사하면서도 굉장히 다르잖아요. 이렇게 다른 종류의 휘말림을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이 들었어요. 요양병원 운동도 장애 운동과 접점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다른 종류의 휘말림을 어떻게 같은 하나의 운동의 흐름으로 엮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그리고 그럼에도 두 가지는 차이들이 크게 있잖아요. 차이들을 어떻게 인지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을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혜원) 나눠주신 질문들에 대해서 각자 답하고 싶은 분들은 패널분들까지 답을 해 주세요.
(승욱) 저도 당뇨 중증 상황이긴 해요. 관리를 해야 해요. 농담으로 HIV나 당뇨나 수치 관련해서 관리하는 건 비슷하네? 혈우병도 수치를 유지를 위해 평생 매일 자기에게 주사를 스스로 놓고, 저도 계속 끊임없이 약을 먹고. 차이점이라면 HIV/AIDS는 낙인이 찍혀 있는 상황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서로 다른 병을 가진 사람들이 웃으면서 ‘네 병, 내 병’ 재지 않고 농담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게 저는 사실 저만의 목적이고요. 저는 농담할 수 있는 사이가 좋은 사이, 안전한 사이라고 생각해서 개인들 사이에서부터 같이 휘말리면서 단체로 넘어가고 사회적으로 다 같이 휘말리는 사회가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원) 같이 휘말리면 좋겠어요. 저는 당사자의 감염 사실을 말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주변에 있는지 없는지 체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당뇨 왔어, 주사 놓고 올게’ 얘기할 수 있는 거랑 내가 당뇨임을 아무한테도 말 못 하고, 지속가능한 질환이든 장애든 혼자만 감당하는 것은 완전히 무게가 달라요. HIV도 그렇고. 모든 것들이. HIV 감염인분들이 사실은 삶이 그렇게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일찍 발견해서, 정말 케이스가 좋게 풀리는 분들은요. 저는 지나칠 정도로 운이 좋은 감염인이에요. 그런데 만약에 그런 분들에게라도 뭔가를 물어보면 항상 상처 받아요. 내가 ‘완벽한 정상 신체’가 아니라는 것에 너무나 서운해하고 걱정하시고. 0이나 100이 아닌 중간에 너무 많은 소수점들이 있잖아요. 우리는 일정 나이가 가까워지면 약 하나는 뭐라도 먹어요.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늙어요. 그래서 0이나 100이 아니라고 해서 그 상황에 반드시 우리가 존재하게 될 거고,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는 모두 휘말려 있으니까 서로가 휘말려 있다는 것에 대해 서로가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절대 고립되지 말고. 장애든 뭐든.
(보경) HIV/AIDS 인권 운동이 장애 운동과 만나는 관점은 한편으로 전략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보편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상황에서 HIV 감염인이 겪는 차별을 어떻게 법적 구제의 대상으로 만들 것인가 전략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HIV 감염인이 경험하는 상황을 표현하고 바꿔나가는 데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 운동의 역사에서 장애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비판적 장애운동이 만들어낸 여러 질문들을 더 진지하고 격렬하게 껴안아야 한다는 걸 발견해나가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장원 작가님이 잘 말씀해 주신 것처럼 HIV에 감염한 사람들의 몸이 다 같지 않거든요. 젊고 건강하고 많은 활동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늦게 자신의 HIV 감염 사실을 알고, 후기 발현자라고 하는데 뇌 신경이나 다른 부분에 큰 손상을 일으켜서 심각한 신체적 손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를 운의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경험하는 계급적 차이, 노동 경험과 가족 경험, 세대적 차이 등 다중의 억압들이 한 사람의 감염 상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일종의 퀴어/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다중적인 억압을 어떻게 잘 드러낼까 하는 게 중요한 과제였다고 할 수 있고요.
휘말림의 관점에서 장애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승욱 작가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우리가 HIV를 이렇게 특수하게 다루는 이유는, 1980년대에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 잘 모를 때 ‘HIV는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이다’ ‘한번 감염되면 영원히 우리 몸에서 몰아낼 수 없다’고 엄청나게 두렵게 여겼거든요. 그런데 현재 우리는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 감염이 우리 몸을 영원히 떠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있다고 하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가 많은 종류의 손상을 영구적인 형태의 회복 불가능한 손실로 이해하는 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장애 운동은 그런 만성 질환과 손상을 ‘사회적 장애’로 만들게 하는 모든 종류의 연속적인 힘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주요한 문제로 삼고 있는데, 그게 이제 HIV 인권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영감으로 삼고 있기도 하고, 우리가 비판적 장애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영역이라고 급진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HIV 감염 상태를 만성 질환이라고 여긴다고 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당뇨, 고혈압과 같은 여러 만성 질환들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경우에 영구적인 손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동시에 많은 제약을 야기하기도 하는데,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애등록제와 같은 방식들은 의학적으로 인정받은 손상만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종류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마땅한 근거를 매우 편협하고 좁게 결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HIV 감염인들은 심각한 수준의 신체적인 장애를 경험하고 있기도 하고, 동시에 그걸 통해서 우리가 만성 질환과 손상과 감염이라고 하는 걸 분리하고 있는 칸막이들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하는 걸 지금 현재 실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당사자성’을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HIV 감염한 사람이 느끼는 지금 나의 상태, 경험이라고 하는 건 유일무이하고 굉장히 중요한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HIV/AIDS 인권 운동에서 내가 HIV/AIDS 감염인 인권 운동의 주체라고 나설 때의 당사자성은, ‘내가 비감염인이지만 감염인의 심정과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이해나 연민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HIV 감염인이 누려야 하는 권리가 어떤 것들인지를 내가 주장하겠다’, 이 주인이자 주체로 서겠다는 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휘말림의 기세’라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결국 우리가 당사자, 비당사자를 나눌 때 그것의 경계를 누군가의 고유한 정체성, 누군가의 고유한 신체 경험만으로 만든다면 우리가 조우할 수 있는 접점들은 매우 좁아집니다. 결국 이 전체의 장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주장할 것인가’ 하는 걸 중심에 둔다면 우리는 다른 종류의 당사자에 관해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이성애자 여성은 매우 적은 수의 감염 인구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사실 HIV의 역사를 짓는 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첫 ‘에이즈 패닉’을 한국 사회가 경험하는 과정에서 여성 성 노동자들이 경험해왔던 강력한 형태의 폭력이 한국의 성적 억압이라고 하는 체제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례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현재 우리 HIV 감염의 지형에서 여성, 이성애자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우리가 지금 HIV에 가진 많은 종류의 낙인들은 조상이 되는 여성들이 온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것임을 기억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책 마지막에 이주 여성이자 HIV 감염인으로 미래 세대를 키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가 얼마 전 들었던 책에 대한 평 중 하나가 ‘이제 마침내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주민 여성 이야기가 나와서 이 책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주셔서 제가 당황했는데요, 사실 책을 쓸 때 실제로 저희가 ‘미등록 이주민 HIV 치료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다루었어요.
현재 한국에서 외국인들의 HIV 감염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특히나 이중에서도 여성 감염인의 비율이 더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미등록 이주민들은 상시적으로 매일매일 먹어야 되는 약에 접근할 수 없잖아요. 매우 중요하게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해결해나가야 되는 문제이고, 이러한 이주민이 경험하는 건강 불평등은 어느 면에서 한국에서 국적과 시민권을 보장받는 남성 동성애자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낙인과는 매우 다른 종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는 서로 다른 조건에 처한 사람들 간의 연대와 정치적 개입이 매우 시급하게 요구되는 공통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HIV 감염은 어떤 면에서 희귀병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발생규모가 매우 작고, 따라서 발생 추이만을 두고 본다면 우리 사회는 한 번도 역학적인 의미에서 대규모 HIV 유행을 경험해 본 적은 없다고도 말할 수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되는 치료로부터 배제되고 있음을 끝까지 가져가자는 다짐이 책에 새로운 얘기가 시작되는 구조로 담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HIV 감염이 야기하는 여러 질문들에서 여성의 자리, 이주민의 자리가 저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음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혜원) 여러분 오늘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인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사인을 받고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7.31. 주최/주관 휘말린사람들, 퀴어예술연대, 장소 들다방, 도서 <휘말린 날들> 북토크 – HIV감염을 둘러싸고 예술 하기- 속기 요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