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늬, 「학생들은 문 닫은 야학을 계속 찾았다」, 『경향신문』, 2020년 6월 13일.
학생들은 문 닫은 야학을 계속 찾았다
6월 10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노들야학에서 만난 김탄진씨(왼쪽), 장애경씨. / 이하늬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전국 학교의 개학이 미뤄졌다. 장애인평생교육시설로 분류되는 장애인 야학도 마찬가지다. 모든 수업이 취소됐다. 하지만 장애경씨(52)와 김탄진씨(53) 부부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을 자꾸자꾸 찾았다. 중증 뇌병변장애인인 이들은 노들야학 학생이다.
이들 부부가 서울 노원구 월계동 집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야학을 찾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냥 오는 거죠. 선생님들 얼굴도 보고, 또 오늘은 야학에 누가 왔나 한번 보고. 너무 오래 있으면 선생님이 불안해하니까, 그렇게 한두 시간 있다가 집으로 가요.” 수업도 없는 야학에서 뭘 했느냐는 질문에 애경씨가 답했다.
‘또 오늘은 누가 왔나 한번 보고’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문 닫은 야학을 찾은 건 이들만이 아니었다. 발달장애인 정혜운씨(54)도 야학을 찾았다. 평소 그는 동네 도서관과 복지관 등도 자주 찾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갈 곳이 사라졌다. 게다가 혜운씨는 코로나19가 뭔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에 대해 “엄마가 (코로나에 걸리면) 아프다고 했다. 죽는다고 했다. 마스크를 써야한다”고 짧게 설명했다. 다른 발달장애인 학생들도 지금 상황을 코로나19로 인식하기보다는 ‘마스크를 써야하는 상황’ 정도로 인식한다. 학생들은 종종 교사에게 “언제 입 가리개 벗을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
이 때문에 야학에서는 ‘문을 닫으면 학생들이 갈 곳이 없어져서 더 위험하지 않을까’, ‘차라리 야학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한 교육을 하자’,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학생은 어떻게 하나’ 등의 논의가 오갔다. 결국 야학 교사들이 도시락을 들고 학생들 집을 일일이 찾기도 했다.
노들 야학에서 운영하는 카페 ‘들다방’의 모습. 유리창에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 이하늬 기자
“언제 입 가리개 벗을 수 있어요?” 묻는 학생들
야학의 사전적 정의는 ‘정규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야간에 수업을 실시하는 비정규적 사회교육기관’이다. 장애인 야학에도 성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학생이 다수다. 그래서 야학에는 15개 장애유형 중에서도 장벽이 높다는 뇌병변·지적장애·자폐장애 학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애경·탄진씨 부부도 마찬가지다. 탄진씨는 아홉 살 때 극장에 혼자 남겨졌다. 이후 32년 동안 시설을 전전했다. 애경씨는 스물여섯 살에 시설에 들어가 마흔 살에 시설에서 나왔다. 이들은 시설에서 몰래 연애를 하다가 그곳에서 나온 이후 결혼했다. “어렸을 때 학교에 못 가서, 다른 학교랑 똑같이 배우고 싶었대요.”탄진씨 대답을 송용욱 활동보조인이 전달했다. 탄진씨는 언어장애가 있다.
탄진씨는 야학에서 공부해 중·고등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올해 2월에는 사이버대학을 졸업했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도 땄다. 애경씨는 공부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애경씨는 “저는 12년째 같은 반”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애경씨는 야학에 빠지지 않고 온다. 야학에서 애경씨가 좋아하는 건 음악대다. 그는 디제잉도 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54.4%가 중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다. 학령기에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기회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해당 실태조사에서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0.2%로 나타났다. 탄진씨·애경씨·혜운씨는 이 ‘상위’ 0.2%인 것이다.
이들에게 야학은 수업하는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정보를 주고받고 함께 급식을 먹는다.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은 “비장애인은 학령기 때 차곡차곡 관계가 쌓인다. 하지만 장애인, 특히 시설에서 오래 지낸 사람일수록 관계가 다 여백이다”라고 했다. 박 교장은 “그렇다 보니 야학이 이런저런 역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들야학을 찾은 지난 6월 10일은 수업이 없는 날임에도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애초 한 끼에 2000원이던 야학 급식은 그마저도 낼 수 없는 형편의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한다. 선생님과 직원, 외부인에게는 6000원을 받는다. 혜운씨는 이날 야학에서 점심과 저녁을 모두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노들야학의 급식소 모습. 애초 야학은 모든 사람들에게 2000원의 급식비를 받았으나 학생은 무료, 교사 등은 6000원 정책으로 바꿨다. / 이하늬 기자
야학은 수업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박 교장의 지적처럼 야학이 다양한 역할을 하다 보니 코로나19 국면에서 야학이 문을 닫은 게 학생들에게는 큰 타격이 됐다.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닌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얻고 급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장애인 상당수가 스마트기기 사용에 능숙하지 않다.
애경씨의 활동보조인 김나라씨는 “코로나19로 야학이 문 닫은 당시 애경씨를 찾아가면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확진자 수가 가장 큰 관심사였고 확진자가 늘어나면 화를 냈다”며 “비장애인은 출·퇴근이라도 하고 스마트폰이라도 하지만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은 말 그대로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니 매우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레서 대구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사들은 4월 13일부터 방문 수업을 다녔다. 4월 13일 이전에도 학생들 집을 찾아 간편식을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했지만 학생들이 감염병에 대해 갖는 막연한 두려움을 설명하고 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 생기는 무기력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지난 5월 6일부터 학교가 개학하면서 야학도 문을 열게 됐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관련해 야학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야학과 같은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은 민간기관이기에 예산지원만 가능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마스크와 같이 구하기 어려운 물품이나 방역서비스 같은 직접 지원은 받기 어렵다.
박경석 교장은 “유·초·중·고·특수학교는 굉장히 신경을 쓴다. 하지만 장애인 야학은 방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원을 요구하면 정규 학교가 우선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 식으로 접근할 거면 야학이 왜 있나? 장애 때문에 처음부터 학교에 못 갔고, 그래서 지금 야학에서 공부·관계, 급식까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보경 질라라비야학 사무국장도 “성인 장애학생들에게 야학은 학령기 학생의 학교만큼 중요하다“며 ”하지만 매번 법적 기준이 없다며 지원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번에도 각 지자체별로 지원에 차이가 나는 등 체계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자체에 따라 다르고 부족한 부분은 야학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시스템인 것이다.
2017년 평생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장애인 평생교육도 포함됐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가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다. 근거는 간단하다. 헌법 제31조 5항은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 권리를 누리는 장애인은 0.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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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131713021#csidxd6e3a8381ff308799f8ee76053a4676